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알고 보니 밤새도록 자기 옆에 잠들어 세상 모르고 있던 여자는 강주 아가씨가 아니었다.

얼토당토 않게 그 여자는 바로 자기 아버지 정기봉의 다섯째 시첩인 독장미 갈운낭이라는

여자였다.정여룡의 놀람은 이만저만한 게 아니었다.전신에서 식은땀이 비 오듯 했다.독장

미 갈운낭이란 여자가 어째서 난원에 와서 자고 있었는지? 도무지 까닭을 알 길이 없었다

. 또, 난원 바깥 방에서 자고 있는 것은 분명히 강주 아가씨의 계집종 비운이라는 것을 자

기 눈으로 똑똑히 확인했었는데 ‥‥‥?계집종은 난원에 와서 자고 있는데도 어째서 강주 아가

씨는 이 안방에서 자고 있지 않았단 말인가?’아! 나는 분명히 누구의 속임수에 넘어간 것

이었구나!’퍼뜩 이런 생각이 정여룡의 머리 속을 번갯불처럼 스쳐 나갔지만 그 이상 뭣을

더 생각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.’만일에 이런 사실이 아버님께 알려졌다가는?’그는 자기

부친 정기봉의 무서운 성미를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다. 목숨이 붙어날지, 그대로 없어져

버릴지? 예측을 불허하는 무시무시한 결과가 눈앞에 훤히 내다보였다.두말할 것 없이 이

제는 선후 대책을 빨리 강구하는 길밖에 없다고 생각했다.날이 활짝 밝았으니 독장미 갈운

낭을 거처하는 곳으로 안고 가다간 남의 눈에 될 것이 뻔했다. 그렇다고 해서, 만일에 이

여자를 자기 거처로 돌려 보내지 않고 그대로 있다가 만일에 다섯째 시첩의 처소가 발칵

뒤집혀 어디론지 실종되었다고 일대 소동이 일어나면 그때는 더욱 수습하기 어려워질 판

이었다.뿐만 아니라, 정기봉의 다섯째 시첩인 이 갈운낭이라는 여자는 여러 시첩 가운데

서도 성미가 가장 괴팍하고 앙칼지며, 무술 재간도 정여룡 따위가 문제가 아닐 만큼 놀라

왔다.아차하는 날에는 정여룡은 갈운낭 하나의 보복만도 감당해 낼 자신이 없었다. 생각하

면 생각할수록 머리 속만 어지러워지고, 이마에서는 구슬 같은 식은 땀방울이 줄줄 흘러

내렸다.이렇다 할 만한 묘책이 서지 않았다.정여룡은 어찌해야 좋을지 몰라서 무작정

침상 아래로 내려서서 옷을 주섬주섬 주워 입었다. 그러고 나서 실오라기 하나도 걸치

지 않은 갈운낭의 몸을 이불 자락으로 덮어 주었다.역시, 어쩔 줄 모르고 방안에 얼빠

진 사람같이 멍청히 서 있었다.바로 이 찰나에, 홀연, 방문 밖에서 어떤 사람의 발자국

소리가 들려 왔다.정여룡은 혼비 백산하여 전신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. 그 발자국 소리

의 주인공이 누구라는 것을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. 그것은 바로 자기 부친의 발자

국 소리였다.왈칵 방문이 밖으로부터 잡아당겨져서 활짝 열렀다. 성수신검 정기봉이 얼굴

이 새파랗게 질려 가지고 곧장 침상을 향해서 뚜벅뚜벅 걸어