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홍백 아가씨의 말이 뭣을 의미하는지를 선뜻 알아차렸다.감격이 넘치는 미소를 입가

에 담뿍 드러내며 말했다.”언니 ! 정말 고마워요!”홍백 아가씨는 자운 아가씨에게 어떤

암시를 주느라고 눈매가 샐쭉해졌으나, 금방 태연히 웃으면서 대꾸했다.”호호! 일후에

라도 나를 잊어버리지만 않으면 그만이지! 자아 인제 어서 돌아가요!”자운 아가씨는 홍

백 아가씨가 이렇게도 너무나 뜻밖인 호의를 베풀어 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

. 마생이 신영시자의 문하생이라는 점에서 이런 호의를 표시해 준다는 점을 잘 알고 있

기는 했지만, 단지 그 한 가지 까닭 때문에 이렇게까지 자기를 감싸주고 돌봐줄 수 있

을 것인가?그러나 사실인즉 홍백 아가씨의 이런 태도에는 따로 자신만이 아는 깊은 까닭

이 있었다. 홍백 아가씨는 단지 애정 문제 때문에 신영궁을 떠난 것이었지, 추호도 신영

시자를 배반하자는 뜻은 없었다. 한때, 격분을 참지 못했지만, 다시 냉정히 생각했을

때 신영시자가 다시 자기를 잡으려고 할까 겁이 나서 무영객의 문하에 투신한 것이었다.

꽤 오랜 세월이 아무 일도 없이 흘렀다. 그런데도 신영시자는 홍백 아가씨를 찾아서 처벌

하거나 응징하려는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. 뿐만 아니라 신영시자는 홍백 아가씨를 생

각하고, 구미선호(九尾仙狐)라는 계집을 신영궁에서 축출해 버렸다는 소문까지 들려

왔다.사태가 이쯤 되고 보니, 홍백 아가씨는 무시로 자신의 경솔한 행동을 후회했고,

신영시자의 관대한 처사에 감격하지 않을 수 없었다.그러나 천하제일방의 무영객은 그

렇게 단순하거나 간단한 인물이 아니었다. 그를 배반하는 날에는 반드시 잔악하고 처

참한 형벌을 받아야 한다는 점을 생각했을 때, 두 번 다시 경거망동을 할 수도 없었다.

이제 마생이 신영시자의 문하생이라는 말을 듣게 되자, 홍백 아가씨는 불현듯 옛날 주

인이 그리워졌다. 또 자운 아가씨가 마생을 꿈에도 잊지 못하고 사랑하는 소녀라는

사실을 알게 되자, 자기의 옛날의 사랑의 보금자리가 새삼스럽게 머리 속에서 떠나

지 않았다. 그래서 마생과 자운 아가씨의 연줄을 타고서라도 다시 신영시자에게로

돌아가서 옛날과 같이 단란한 생활을 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.그러나 이런 심정

을 털끝만치도 표면에 드러내지는 않았다. 단지 천하제일방의 방주도 자운 아가씨

에게 유난히 관대한 태도를 보여주었는지라, 흥백 아가씨도 이렇게 대담한 호의를

베풀어 준 것이었다. 그렇지 않다면 홍백 아가씨가 아무리 대담 무쌍하다 해도 외

부사람을 위해서 제멋대로 유익한 일을 해주지는 못했을 것이다.일견사 허비는 매

서운 눈초리로 홍백 아가씨를 한참 동안이나 노려봤다.킥킥거리며 마음에도 없

는 간사스런 웃음을 터뜨렸다.”크크크! 홍백 아가씨! 방주님께서 사죄(死罪)를 내

리실까 두렵지 않소!”홍백 아가씨는 입을 삐쭉했다.